불리기
원화의 국제화를 위해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할 때
2026.05.21한국 자본시장의 위상은 빠르게 올라가는데, 원화는 그 흐름에서 비켜 서 있는 묘한 비대칭이 이어지고 있어요. KOSPI 지수는 7,000pt를 돌파했고 한국 국채는 세계국채지수(WGBI)에 편입됐지만, 원/달러 환율은 다시 1,500원을 상회하는 중이에요. 이 격차를 좁히는 길은 원화 사용의 통로를 넓히고 보유 수요를 키우는 것, 즉 원화의 국제화에 있어요.
유독 취약한 원화, 왜 지금 제자리를 찾아야 하나
한국 자산의 위상 상승이 곧 원화 가치와 지위 상승으로 연결되지는 못하고 있어요. KOSPI가 7,000pt를 돌파하고 국채가 WGBI에 편입되는 사이에도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다시 넘어섰어요.
글로벌 무대에서 원화의 자리는 아직 좁아요. 한국이 세계 7위권 수출국임에도 SWIFT 글로벌 결제 통계 기준 상위 20개 통화에 원화는 들지 못해요. 한국 기업조차 원화를 글로벌 결제수단으로 적극 활용하지 않고 있고요. 거래·헤지통화로서도 2025년 BIS 외환거래 통계 상 원화 비중은 1.8%로 한국 GDP의 전세계 비중과 비슷한 수준이에요. 한국과 경제 규모가 비슷한 호주·캐나다 통화가 GDP 비중보다 4~5%p 더 많이 거래되는 것과 비교하면, 원화는 국제 거래통화로 자리잡았다고 보기 어려워요.
이제는 원화도 '국제 활용 통화'로의 진화를 지향할 때예요. 호주·캐나다는 한국과 경제 규모가 비슷하면서 이미 이 단계에 진입한 벤치마크이고, 일본은 1980년대 국제화 본격 추진기의 경제 환경이 현재 한국과 유사해 정책 경로 측면의 참고 모델이 돼요.
두 사례가 주는 결론은 분명해요. 통화 국제화는 자유화와 양호한 펀더멘털이 동시에 갖춰질 때만 진전된다는 점이에요. 자유화는 통로를 열고, 펀더멘털은 그 통로로 들어올 자금의 규모를 결정해요. 따라서 원화 국제화도 두 축, 즉 외국인이 원화를 자유롭게 거래·헤지·결제·보유할 수 있게 하는 거래·결제 자유화와, 펀더멘털이 만들어 내는 보유 욕구 확대가 함께 가야 해요.
원화 사용의 통로를 어떻게 넓혀야 하나
원화 사용의 자유화는 3년 차에 접어들었고, 마찰 제거는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어요. 한국은 외환위기 트라우마 때문에 오랫동안 자유화에 신중했지만, 자본시장·교역 규모와 통화 위상의 비대칭이 분명해지자 정부와 한은은 2023년 말 IRC(외국인투자자 등록제) 폐지 이후 「외환시장 구조개선 방안」 패키지를 본격 가동했어요. 시간의 마찰(거래시간 단계적 연장), 참여 자격의 마찰(RFI 등록제 도입), 결제 시점의 마찰(국채 DvP 결제 마감 연장) 세 축에서 외국인의 원화 사용 마찰을 줄이는 데 집중한 정책들이에요.
성과는 빠르게 나타나고 있어요. RFI 등록사 수는 2024년 6월 29개에서 2026년 4월 79개로 늘었고, 외국인 보유 국채 비중도 2018년 15.2%에서 2025년 25.7%까지 확대됐어요. 원화 외환거래 규모도 빠르게 커지고 있고요.
다만 외국인은 여전히 한국 자산 매수 시 원화 환위험을 헤지하려는 모습이에요. 원화 외환거래에서 파생상품 비중이 현물환보다 크고, 역외 NDF 시장도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보여줘요. 마찰은 줄었지만 원화 보유 위험 자체가 줄어든 건 아니며, 외국인이 원화를 직접 보유·운용할 수 있게 하는 인프라도 아직 미비해요.
자유화의 다음 단계는 원화 자체가 글로벌하게 쓰이도록 인프라를 만드는 일이에요. 달러·유로처럼 진정으로 국제화된 통화는 '글로벌 금융의 운영체계' 자체로 작동해요. 미국 역외 금융사가 달러 계좌를 보유하고 달러 단기자금시장에서 자금을 운용하고 24시간 어디서나 달러 결제가 가능한 것이 그 예인데요. 반면 원화는 아직 서울 영업시간과 국내 기관 중심의 역내 구조에 가까워요.
이를 바꿀 핵심 인프라가 외환시장 24시간 개장(7월부터)과 역외 원화결제 시스템 구축(2027년 가동 목표)이에요. 그동안 원화 거래의 종착지는 한국 결제망·한국 영업시간이었는데, 역외 원화결제 시스템은 이 종착지를 한국 밖으로 확장해요. 한은이 24시간 역외 원화결제망을 운영하고, 지정된 외국 금융기관이 이 결제망에 직접 접속하며, 시중은행이 해외 기관과 결제망 사이의 실제 결제 실행을 담당하는 역할 분리형 구조예요.
구분 | ① RFI 이전 | ② RFI 도입 후 (현재) | ③ 역외 원화결제 도입 후 |
|---|---|---|---|
외국기관의 원화계좌 위치 | 사실상 국내 기관 명의·국내망 의존 | RFI 등록 후 국내 원화계좌 활용 가능 | 해외에서도 원화계좌 기반 거래·결제 가능 방향 |
결제망 구조 | 한국 내부 결제망 중심 | 국내 결제망 중심 유지 | 24시간 역외 연계 결제망 확대 |
운영 시간 | 한국 영업시간 중심 | 일부 연장 | 24시간 운영 |
외국인 간 원화 거래 | 매우 제한적 | 가능은 하지만 결국 국내 결제망 경유 | 해외 기관끼리 직접 원화 결제 가능성 확대 |
외국인의 한국 자산 투자 | 접근 절차 복잡 | RFI 기반 접근성 개선 | 글로벌 자금의 실시간 접근성 강화 |
환헤지 방식 | 역외 NDF 중심 | 여전히 NDF 의존 높음 | 실물인도형 선물환 확대 가능 |
원화 조달 방식 | 국내 은행·스왑시장 의존 | FX swap 기반 조달 확대 | 역외 원화 유동성시장 형성 가능성 |
(출처 : 신한금융지주 미래전략연구소)
인프라가 깔린다고 그 위에서 시장이 자동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아요. 실제 거래·호가·결제를 채워 넣는 것은 민간 금융사의 몫이기 때문이에요. 역외 원화결제 인프라가 열린다는 것은 글로벌 은행에게도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는 의미인데요. 원화 유동성 공급, 시장조성, 외국인 자산 수탁 등 핵심 기능을 글로벌 시간대·다통화 운용·외국인 고객 네트워크를 갖춘 대형 글로벌 은행들이 선점할 가능성이 있어요. 외국인의 '기본 거래처' 자리는 한 번 굳어지면 바뀌기 어렵기 때문에, 국내 금융권도 원화 거래·헤지·수탁의 공급자 역량을 선제적으로 갖춰야 해요.
다만 인프라는 통로일 뿐, 그 위에 흐를 '원화 자산 거래'와 '원화 자체에 대한 수요'가 자라야 진정한 국제화에 도달해요. 외국인이 한국 자산을 사도 환위험을 모두 헤지하면 원화 수요는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결국 한국 자산 거래 흐름 확대와, 그 가운데서도 환위험을 헤지하지 않고 원화로 보유하려는 수요 확대가 함께 일어나야 통화 국제화가 진전돼요.
원화 보유 수요는 어떻게 키울 수 있나
원화 보유 수요 확대는 펀더멘털에 대한 장기적 신뢰 누적이 전제돼요. 일본 사례에서 봤듯이 펀더멘털 신뢰가 약해지면 보유 수요는 빠르게 무너져요. 위기 국면에서도 자산·통화 가치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경험, 정책의 예측 가능성, 시장 규율의 신뢰성이 시간을 두고 쌓여야 비로소 달성 가능한 영역이에요.
다행히 토대는 이미 다져지는 중이에요(미래전략연구소 「한국 주식시장 구조 전환을 위한 조건」, 2026.4월). 밸류업 정책으로 KOSPI 12개월 선행 PBR이 0.85배에서 1.4배로 상승했고, 상법 개정·고배당 유도·공급물량 조절 등 주주환원 구조도 정착되는 중이에요. WGBI 편입으로 한국 국채는 글로벌 벤치마크 자산이 됐고요.
글로벌 롱머니도 한국 증시에 긍정적 시각을 표명하기 시작했어요.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2025년 한국 주식이 펀드 수익에 가장 긍정적으로 기여한 국가 중 하나라고 발표하면서 한국의 거버넌스 개선을 자산배분 동인으로 언급했어요. buy-and-hold 성격의 연기금·국부펀드·보험은 환헤지 비율이 낮은 편이라, 이들의 한국 자산 매수는 곧 원화 보유 수요로 직결될 수 있어요.
외국인 개인의 한국 주식 직접 투자라는 새로운 채널도 등장했어요. 외국인통합계좌 제도의 세부 운용이 점진적으로 개편되면서, 해외 개인 투자자가 현지 증권사 플랫폼을 통해 한국 주식을 직접 거래할 수 있게 된 것이에요. 한국 개인이 미국 주식 거래 시 환헤지를 거의 하지 않는 것처럼, 외국인 개인도 동일한 패턴이 예상돼요. 즉 해외 개인의 한국 주식 보유 증가는 곧 원화 수요 확대로 이어진다는 의미예요.
여기에 +α로 생활 밀착형 보유 수요가 더해질 수 있어요. K-여행·콘텐츠·플랫폼 소비 확대는 외국인의 원화 친숙도·접점을 늘려 줘요. 다만 이 수요 자체는 얕고 분산되어 있어 본격적 국제화로 직결되진 않아요(방한 시 현장 소비 외에는 K-콘텐츠·직구·게임 결제도 대부분 글로벌 PG에서 달러로 처리). 자본시장 수요 위에 더해질 때 의미가 생기는 영역인데요. 향후 원화 스테이블 코인 같은 디지털 결제 인프라가 깔리면 일부 영역에서 더 두터운 수요로 전환될 여지가 있고, 한국이 제조업과 디지털·문화·플랫폼 영향력을 동시에 가진 드문 나라라는 점이 이 잠재력의 원천이에요.
금융권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현 시점은 원화 사용의 자유화 정책과 펀더멘털이 동시에 받쳐주는 '국제화'의 적기예요. 원화 자산 수요 위에 운영 수요가 자라기 시작한 단계로 분석돼요. 이후의 핵심은 '원화 자산 수요 → 원화 운영 수요 → 원화 보유 수요'로 이어지는 수요 사슬을 완성하는 것이에요. 국내 금융권은 이 선순환이 작동하도록 ① 거래·헤지·수탁 역량 확보, ② 투자 매력을 갖춘 원화 상품 라인업 확충을 선제적으로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함께 만들어 가야 해요.
저자 정보
이름: 강재현
직업/직함: 신한금융지주 미래전략연구소
조직: 신한금융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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